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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뮤리뷰 :D

'열심히'에 배신 당했다. [열정이라는 착각 - 최영선]

by 기뮤네 2024. 5. 27.

*이건 책 내용에 대한 리뷰보다는 독후감에 가깝습니다.

늘 읽는 그 순간에만 자극을 받고, 돌아서면 익숙한 삶을 살았던 자기 계발서들.
이 책도 다를 게 있겠나 했지만, 웬걸 프롤로그부터 형광펜을 들고 읽었다.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가난했다. 초등학교 때는 (사실 국민학교 시기였다) 일부러 준비물 얘기를 엄마한테 하지 않고 그냥 학교 가서 혼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고3 시절, 수시로 대학을 확정 지어놓고 2학기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아르바이트는 때로는 투잡, 때로는 쓰리잡으로 지금 내 나이 38살까지 이어져 왔다. 주변에서는 다 나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하며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래, 난 진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근데 왜 아직 월급 10일 전부터는 이미 텅 비어버린 통장과 한도까지 차버린 카드에 친구와의 만남조차 잡지 못할까. '착한 척'이라는 가면을 쓰고서라도 배려가 일상이었고 도움을 청하는 손 길을 무시한 적 없는데, 왜 아직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여러 문제에 괴로워하고 있는 걸까.
 
 '열정이라는 착각'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내 지난 19년이 얼얼했다. 책을 한 장 넘기지도 않은 상태에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네가 열정이라고 생각한 그건 사실 열정이 아니라 ㅇㅇ이다 멍청아' 뭐 이런 내용일까. 괜히 억울하고 서운해서, 책을 받아 놓고서도 일주일이 지나서야 손에 들었다. 그제야 발견한 제목밑의 작은 글씨들.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는 신념, 그 착각에 대하여'
 
나는 착각으로 내 인생을 포장해 왔다.

열정이라는 착각

책을 펼치고 프롤로그에서부터 형관펜을 그어대기 시작했다. 
 
무엇을 향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방향과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심히'만 신봉하며 살아온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깨달았습니다.
 

내가 보냈던 '열심히'의 시간 끝에 무엇들이 있었는지 되새겨봤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계속 떠올리려고 하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떠오른다. 그렇게 애타게 열심히 살았건만 아직 아무것도 없다. 그럼 나는 뭘 열심히 한 걸까. 분명 힘들게 애쓴 시간들로 가득했는데. 아. 나의 '열심히'의 기준은 '노동으로 보내는 시간의 양'이었다. 그냥 계속 머리를 쓰고, 계속 몸을 써서 불편하게 땀을 흘렸던 그 시간들이 나의 '열심히'였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위해 그 땀을 흘렸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성취한 어떤 것도 없는 것을 보면 없다. 나의 '열심히'는 방향과 목적이 없었다. 방향이 없었으니 끝이 없었고, 목적이 없었으니 달성이 없었다. 와. 그렇게 힘든 시간들이었는데, 억울하다.
 
체크를 해놓고 20번도 넘게 읽은 단락이 있다.
 
'열정'은 끌리는 일에 쏟는 에너지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은 굳이 열정을 끌어내지 않아도 힘을 쏟게 된다. 열정은 하기 싫은 일에도 용기 내어 매진하는 '근기'이다.
 
덕질을 하며 최애 아티스트의 굿즈를 만들거나 팬카페의 올릴 콘텐츠를 만들며 밤을 새웠던 것은 '열정'이 아니었다. '애정'이었다.
 
하기 싫은 일에 왜 굳이 용기까지 내서 매진해야 할까. 지금까지도 이런 생각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다. 나는 아직 열정을 품어 본 적이 없나 보다. 하기 싫은 일을 나름의 '열심'으로 한 적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용기를 내는 일은 없었다. 
 
출근 지하철에서 절반, 퇴근 지하철에서 다시 나머지 절반을 읽었다. 여느 자기 계발서의 독후감과는 달랐던 점이, 대단한 동기부여가 된다거나 막강한 의지가 생긴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냥 '인정' 하게 되었다. 내가 열심히 살아온 시절에 뒤통수를 맞아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방향과 목적을 몰라 '그냥' 살아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또 뭔 열정으로 살아가겠다는 그런 다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열정'에 부합하는 순간이 왔을 때, 뭔가 모를 쾌감이 느껴질 것 같아 설레는 마음은 있다.
 
책을 덮고 나니 꼭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엉뚱할지언정 내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오늘은 꿈 안 꾸고 숙면할 것 같다.
 
정말 너무 좋은 책이다. 이 책이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바람이 생기니 더 불만으로 다가오는 것이 있다. 바로 책 디자인이다.
 
의도야 있었겠다마는 매칭이 안 되는 듯한 그림과 그림에 묻혀 숨겨져 버린 제목, 소제목. 그림을 위한 책이 아닐 텐데 왜 그림을 내세웠을까. 그냥 단색 배경에 제목만 써놨어도 훨씬 깔끔했을 것 같다. 어느 사이트 리뷰에 '청소년 도서' 같다는 후기도 있었다. 
 
책 표지 디자인도 마케팅의 일환 아닌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고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연히 집어든 책이 내용까지 좋으면 얼마나 좋은가. 솔직히 중학교 때, 교실에 배부됐던 옛날 청소년 지정도서 같은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 이쁘고 안 이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 굳이 그 그림이 부각되어야 했나.
 
베스트셀러나 돼버려라.
빨리 다 팔려버리고 2쇄가 새로운 디자인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열정이라는 착각 | 최영선 - 교보문고

열정이라는 착각 |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손에 쥔 게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면?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머물러 산다. 현재의 고통과 슬픔은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지배하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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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라는 착각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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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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